Q&A시리즈(1) 가인의 아내는 누구인가요?
질문에 대한 둘째 단계 근친 아닌가?
이재만, ACT뉴스 2014년 4월
가인의 아내가 여동생이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만약에 그 아내가 여동생이라면 근친결혼 아닌가요?”
어떤 면에서 이 근친결혼에 대한 부분이 가인이 여동생과 결혼했다는 성경적인 질문보다 더 부담되는 궁금증이다. 왜냐하면 여동생을 아내로 맞이했다는 것은 성경 속으로 들어가 꼼꼼히 맞춰보면 찾을 수 있지만, 근친결혼에 대한 질문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날에는 가까운 근친결혼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의 몸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돌연변이 같은 과정에 의해 이미 많은 유전자 손상을 입었다. 그런데 오누이끼리 또는 가까운 친척끼리는 그 손상 받은 유전자부위도 비슷하므로 서로 관계를 가질 경우 그 후손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치명적인 문제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아빠가 Aa이고 엄마가 Aa 유전자를 각각 가졌다고 하자. 이 둘이 결혼을 하면 다음 세대는 유전적 재조합에 의해 확률적으로 각각 AA, Aa, Aa, aa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아빠가 돌연변이에 의해 A 유전자에 결손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Aa, Aa는 엄마에게서 온 a나 A 유전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A라고 하는 유전자의 기능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 자식들끼리 근친결혼을 할 경우, 예를 들어 AA나 Aa를 가진 오빠가 AA나 Aa를 가진 여동생과 결혼하면 AA의 조합을 갖는 경우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때는 A에 대한 기능을 하는데 치명적인 문제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가까운 근친결혼은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날의 세상과 지금 우리의 신체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지금의 세상은 창조 이후에 타락, 홍수심판, 바벨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주요 사건을 겪은 후에 맞고 있는 변질된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은 이 굵직굵직한 사건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때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셔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났다. 아담의 후손이 죄악이 가득 찼을 때 하나님께서 쓸어버리셨던 노아홍수 심판사건 이후에 성경에서는 처음으로 추위와 더위가 등장한다. 즉 처음에는 아담과 하와가 옷을 입지 않았어도 좋았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는 의미다. 홍수심판 이전 노아의 족보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900살 이상씩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홍수를 지나며 나이가 갑자기 줄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신체에 변화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라고 하셨는데, 즉 창조되었을 당시의 아담 부부의 신체는 흠이 없을 정도로 좋았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가인이 자신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이하여도 생물학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가인이나 여동생이나 유전자에 거의 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노아홍수 직후에도 비슷하게 펼쳐진다. 홍수심판 이후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인 함, 셈, 야벳 세 부부는 자식을 낳았을 것이다. 과연 이들의 자식들은 누구와 결혼했을까? 아무리 멀어도 사촌지간일 것이다. 그래도 그때까지 유전적 결손이 그리 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홍수 후에 태어난 노아의 후손들은 한동안 서로 결혼했을 텐데, 이런 상황에 변화를 주는 중요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바로 바벨탑 사건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시킴으로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다. 이때 흩어지는 장면이 성경에 등장한다. “각기 언어와 족속과 나라대로”(창 10:5). 영어로는 “after their languages, after their families, in their nations”로 번역되어있다. 풀어서 쓰면 “언어에 따라, 가족(들)에 따라, 그들의 나라가 되었다”이다. 즉 하나님께서 가족끼리 흩으셨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당시에 흩어지며 이들의 자식들은 누구와 결혼했을까? 여기서도 여전히 오누이간의 결혼이 그려진다.
이런 근친간의 결혼은 바벨탑 사건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들은 모두 근친 간에 결혼을 했다. 아브라함의 가계도표가 도움이 될 것이다(그림). 아브라함과 그 아내인 사라와의 관계는 아버지(데라)는 같지만 엄마가 다른 이복 여동생이다(창 20:12).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서로 오촌간이다. 즉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아들 브두엘의 딸이다(창 22:23).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남종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해 아내를 택하라”(창 24:4). 여기서 내 족속은 영어로 “my own relatives”, 즉 가까운 친족을 의미한다.
이런 모습은 이삭의 아들인 야곱에게도 등장하는데, 야곱과 아내인 라헬은 서로 외사촌간이다. 더군다나 이삭이 아들 야곱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한다.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창 28:2). 라반은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빠다. 이삭이 야곱에게 외사촌과 결혼할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가까운 친척과 결혼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넘어 장려하고 있었다. 또한 에서가 다른 족속의 여자와 가까이 하는 것을 걱정하는 리브가의 걱정(창 27:46)을 보더라도 이런 분위기를 충분히 엿보게 한다. 성경은 여기에 어떤 이유도 말하지 않는다. 어색한 부분도 없다. 그러나 성경을 사실로 보고 접근을 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우리 신체는 처음이 좋았으면, 이때까지만 해도 근친결혼을 하더라도 유전자 결손 위험이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와 같이 근친결혼을 허용하던 상황이 반전되는 대목이 등장한다. 바로 출애굽을 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명령에서다.
“각 사람은 자기의 살붙이를 가까이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레 18:6)
“너는 제 자매 곧 네 아버지의 딸이나 네 어머니의 딸이나 집에서나 다른 곳에서 출생하였음을 막론하고 그들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라” (레 18:9)
살붙이는 가까운 친척(close relatives)를 말한다. 야곱 때만해도 허용과 장려를 하던 상황이 수백 년 후에 바뀐 것이다. 그 동안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우리 몸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한결같은 하나님께서 조치를 바꾸실 때는 우리가 변했을 때다. 허락이 아니라 장려하던 근친결혼을 금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변명도 없이 명령하셨다. 사실인 성경적 역사를 보면 지금 이 시점에서 근친결혼 금지는 당연한 조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역사관과 세계관으로 성경을 보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성경을 사실로 놓고 볼 때 ‘가인의 아내’는 그 답에 어려움이 없다. ‘가인의 아내’ 질문은 우리의 몸과 환경이 과거에도 지금과 똑 같았다는 사고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이 기준이 아니라 성경적 역사가 사실이라는 생각으로 당시 상황으로 들어가면 분명한 해답을 얻게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이 갖고 있던 제한된 사고에서 벗어나서 처음이 좋았던 성경적 역사관을 갖추게 하는 귀한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