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14) 징조의 기능으로서 광명체
이재만, ACT뉴스 2014년 1월
광명체들을 만들면서 등장하는 단어 하나가 더 있는데 바로 ‘징조(sign)’다. 나머지 계절, 날, 해는 시간의 주기들인 반면에 징조는 독특한 단어다. 징조는 어떤 일이 일이 일어날 기미를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징조로 별을 사용하신다는 의미다. 어떤 면에서 앞의 시간의 주기와 징조는 상반되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기란 변함없는 정확한 기간이지만, 징조는 오히려 이 변함없는 상태를 깨뜨리는 독특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별을 통해 징조를 보여주신 적이 있지 않은가? 바로 아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이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 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마 2:9).
이 별은 매일 보던 별이 아니라, 특별하게 등장한 별이었고 어떤 특정한 목표물을 향에 움직이는 신기한 상황이었다.
또한 제자들이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라고 물어보았을 때, 여러 징조들 중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 24:9)
이 상황도 날마다 보던 일반적인 별의 운동이 아님에 틀림없다. 항상 밝던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지구를 향해 떨어지는 평상시의 상황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별들을 한치의 오차 없이 움직이도록 만드셨다. 이 별들의 움직임은 우리가 손을 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누가 감히 지구나 달의 자전과 공전에 간섭하랴? 그런데 우리가 손도 댈 수 없는 별들도 하나님께서는 목적에 따라 언제든지 개입하실 수 있다. 징조란 단어를 보며 이런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광명체에 이 두 가지 목적을 심어놓으셨다. 하나는 정확한 시간의 주기로서, 또 다른 하나는 원하실 때마다 개입하시며 징조를 보이기 위함이다. 이는 창조자 외에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완벽한 별들의 운동과 이 별들 가운데 목적에 따라 들락날락하실 수 있는 분, 그분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뿐이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고 그렇게 하셨다. 실제로 아들 하나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렇게 하셨고, 다시 오실 때에도 징조로 별들을 사용하실 계획이시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지구가 매일, 매년 도는데 새 아침, 새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러나 창조자를 아는 우리에겐 그렇지 않다. 시간을 창조하신 분도 하나님이며, 우리는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주기를 정한 창조자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 분께서 만드신 것은 어느 하나도 무의미한 것이 없다. 어떤 것도 의미 없이 만드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새로울 수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새해가 의미 있어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린다. 우리에게 하루와 한 해가 지나가는 것은 시간과 시간의 단위를 정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귀한 기회가 된다. 새로운 주기에서 들락날락하시며 우리를 통해 일을 하실 하나님, 그분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에 없으면 모든 것이 막연해진다. 그러므로 전도서 기자도 하나님이 마음에 떠났을 때를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간다”(전 1:5)고 하며 헛된 마음을 표현했다.
인생은 직선이지만 그 인생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기를 만드신 것이다. 이 매일과 매년 만나는 주기는 결코 경험하지 못하는 새로운 주기가 되는 것이다.
창조이래로 지구는 수십억 번이란 막연한 진화론적 횟수가 아니라 지금까지 수천 번 태양주위를 돌았다. 진화론은 이 막연한 숫자를 말하며 인간이 찰나도 안 되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사람이 동물 중에 하나라고 하며 마치 겸손한척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말이다. 우리의 백 년 인생은 우주 역사의 1%나 장식하는 귀하고 귀한 시간이다. 이와 같이 얼마나 우리 인생이 귀한지를 아는 것은 오직 진짜 역사인 성경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