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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적 진화론 11 창세기는 역사를 서술한 것이지 히브리 시가 아니다.

이재만회장(지질학, 과학교육학), ACT뉴스 20167

 

 

1.JPG


 

왜 당신은 창세기를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창세기는 일종의 히브리 시가 아닌가? 그것을 진짜 역사로 취급할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창세기 1장에 보시기에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그대로 되니라등 반복되는 구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실제로 많은 신학교에서 이와 같이 가르치고 있으며, 이런 문학적 접근이 대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창세기는 히브리 시로 분류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의 내적 근거를 바탕으로 문학적 접근을 시도하더라도 창세기가 시일 수 없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한 마디로 히브리 서술형의 산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창세기는 실제 역사의 기록일 뿐이다.

 

히브리 시와 산문의 차이점

 

창세기가 시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산문인지를 알기 위해서 먼저 히브리 시와 다른 언어의 시의 차이점을 알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 시는 영어나 한국어의 시와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어나 영어의 시는 말의 하드웨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즉 시가 되기 위해서는 소리가 중요하다. 반면에 히브리 시는 소프트웨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즉 소리가 아니라 의미가 중요한데, 소리가 아니라 사고의 대꾸(병행)가 드러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시조로 유명한 고려 말 이방언의 하여가를 예를 들어보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먼저 기본적으로 3, 4조 글자수를 맞추는 운율로 진행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어떠하리가 계속 반복된다. 즉 같은 글자 수를 통한 틀이 반복되고,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기에 같거나 유사한 발음이 반복된다. 이는 영어 시도 마찬가지다. 즉 이 시들은 소리의 틀이 강조된다.

 

반면에 히브리 시는 의미와 정보의 댓구로 정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좋은 것과 나쁜 것, 현명한 것과 어리석은 것, 경건한 것과 불경한 것과 같은 대꾸이다. 히브리 시는 문장이나 구를 통해서 동의어의 댓구를 또는 반의어의 대조를 비교한다. 이런 언어적 특성을 알아야 성경적 히브리 시를 제대로 읽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런 특징은 구약 성경에 등장한 히브리 시인 시편, 잠언, 예레미야애가, 아가서 등의 대부분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창세기는 이와는 전혀 다르게 진행된다. 아래 몇 가지의 예는 히브리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시편 104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 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 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주의 영을 보내어)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편 104편의 29절과 30절은 의미의 댓구적 유사성을 잘 보여준다. “주께서 낯을 숨기신”(29) 것과 주께서 영을 보내신’(30), ‘그들이 떨고’(29)그들을 창조하사’(30),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29)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30)가 서로 대조적인 댓구를 보여준다. 이 시편은 소리로 볼 때는 두 절 간에 운율을 발견할 수 없지만, 의미상에서는 29절과 30절이 댓구를 발생시킨다. 29절은 하나님이 어떻게 피조물의 죽음을 조절하시는지 보여주는 반면에, 30절은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피조물에 생명을 조절하시는지를 말한다. 29절이나 30절의 충분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전체적인 의미상 댓구 구조를 인지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어떤 문장이나 문단에서 히브리 시인지 아닌지 검증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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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예로 잠언을 보자. 어떤 장이든지 매 절마다 연속적으로 의미의 댓구 구조로 가득 차 있다. 때때로 댓구 구조는 한 절 안에서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잠언 28장을 보면,

 

15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16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악한 관원’(15)무지한 치리자’(16)는 유사하며 그 묘사도 비슷하다. 반면에 16절 한 절 안에서도 무지한 치리자탐욕을 미워하는 자가 대조적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소리에서의 유사성이 아니라 의미에서의 유사성과 대조성의 댓구를 보여주는 것이다.

 

댓구 구조가 한 절에서 압축되어 나타나는 또 다른 예가 같은 장에 28절에 등장한다.

 

28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

 

악인의인’, ‘일어남멸망함’, ‘숨는 것많아짐이 서로 댓구 구조를 보여준다. 댓구 구조는 히브리 시의 정보적인 구조를 돋보이게 한다. 이는 주의 깊게 읽어야 실수하지 않는다. 다행히 히브리 시가 소리가 아닌 의미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영어나 한국어로 번역되었다고 할지라도 시적인 면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런 문학적 지식을 갖추고 읽는다면 그 히브리어다운 시적인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접근해볼 때 창세기는 히브리 시가 갖추어야 할 정보적인 댓구 구조를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창세기 4장에서 산문과 시가 함께 나오기 때문에 그 차이점을 쉽게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산문으로 진행되다가 23,24절에 라멕이 아내들에게 말한 시적 내용이 등장하는데 이때 갑자기 댓구 구조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23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아다와 씰라라멕의 아내들’. ‘내 목소리내 말’, ‘나의 상처나의 상함’. ‘사람을 죽였고소년을 죽였도다와 같이 유사한 의미가 댓구를 이룬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가인라멕’, ‘칠 배칠십 배가 대꾸로 반복된다. 23절에서 죽였다는 한 번의 동일한 단어가 반복된다고 할지라도 그 문장에서는 전체적으로 의미의 반복을 통해 자신의 잔인함에 대한 무감각을 자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다른 어디에서도 이런 식의 시적 표현은 찾을 수 없다. 문학적 접근을 하더라도 언제나 서술적 기록이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시로 보는 것은 옳은 해석일 수 없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실과 아담과 그의 후손들의 역사가 서술적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읽을 때 역사적 기록으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실수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서술방식을 보더라도 창세기의 저자는 진짜 역사를 적었기 때문이다.

 

3.JPG


 

이와 같이 시가 될 만한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창세기 1-11장을 히브리 시로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시로 읽음으로써 얻어지는 혹은 버려지는 것이 무엇이기에 궂이 그러한 접근을 하려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진짜 역사인 창세기를 분명한 역사로 보지 않으려고 하는 지적인 추구에 있을 것이다. 그 기록들이 시적인 표현이라고 함으로써 기록된 그대로가 사실일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 태도의 중심에 창세기를 진짜 역사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진화 역사가 들어있다. 수십억 년의 지질시대 동안에 생존경쟁, 자연선택, 진화와 멸종 등이 반복되었다는 역사 말이다. 그들은 창세기 1-11장이 수십억 년 진화의 역사와 양립이 안되는 당혹스러움을 버리고 싶은 것이다. 창세기가 진짜 사실임을 포기하기 위해 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를 꼽자면, 이런 진화론적 사고와 함께 소위 신학적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잘못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운 사람들이 다시 전문가의 위치에 앉는 악순환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는 성경을 읽을 때 지적인 면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창세기를 서술적 기록으로 볼 때보다 시적인 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받아들이기 어려운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억지가 더욱 세련되고 지적인 태도인 양 군림하는 현실 뒤에는 수십억 년을 말하는 진화 역사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진실한 검증도 없이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유행하는 신학적 풍토에 쉽게 타협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성경에서 로 구분된 책들이라고 할지라도 그 성경 기자들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 그 의도였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이건 산문이건 간에 기자들은 이를 통해서 마음에 갖고 있는 사실을 전하고자 애쓴 것이다. 욥기, 시편, 잠언, 아가 그리고 전도서가 시라고 분류되었을지라도 성경 기자들이 반복의 댓구 방식을 통해서 정보와 의미를 강조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모든 성경에 시가서가 제외될 수는 없다. 결국 모든 성경은 성경 기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시는 마음과 사실 역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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