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론적 진화론–우종학 편 1

by honey posted Jan 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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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적 진화론우종학 편 1

이재만 부회장(지질학, 과학교육학), ACT뉴스 2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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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월 한국에서는 유신론적 진화론 책이 한 권이 출판되었다.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우종학, IVP)” 이다. 저자 우종학 박사는 예일대학교에서 천체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모두 수십억 년의 지구나이와 함께 진화 과정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극단적인 유신론적 진화론을 주장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창세기가 문자 그대로 오류가 없다고 하는 창조과학자를 비판하는 식으로 전개되며, 책의 마지막에는 창조, 첫 사람 아담, 원죄 부분까지 성경과 전혀 거리가 먼 해석으로 마무리 한다.

  

유럽이나 미국에도 이와 같은 입장으로 쓴 책이 여러 권 출판되어 교회에 적지 않은 나쁜 영향을 미쳐왔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책이 출판된 것이다. 또한 저자는 수년간 KOSTA(북미 유학생 수양회)를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의 세미나를 들었던 분들로부터 그 동안 많은 문의를 받았던 바 앞으로 두 회에 걸쳐 이 책에 대한 과학적 성경적 문제점을 지적하도록 하겠다. 글을 통해서 이 책뿐 아니라 이와 유사한 책들이 등장했을 때 분별력을 갖추는데 귀하게 사용되기를 바란다.

  

이번 호에는 저자의 단어 사용의 오류, 창조과학자 비판, 저자가 주장하는 진화의 증거들에 대한 내용을 다룰 것이며, 다음 호에는 저자가 만든 유신론적 진화론과 성경 해석에 대한 내용을 다룰 것이다.

  

  

잘못된 용어 사용: “진화론 = 과학

  

사실(fact)’이란 단어가 있다. 한 마디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과학자들의 연구의 대상인 별, 지층, 화석, 생물, DNA등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연구 대상을 데이터(data)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데이터들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현재 모습을 갖추었는지 말을 하지 않는다. 이들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들을 보며 해석(interpretation)’하게 된다.

   

말하지 않는 데이터를 보며 해석해야 하는 것은 창조과학자나 진화론자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이 어떤 화석을 하나 발견했다고 하자. 이 화석은 데이터이다.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데이터를 가지고 창조과학자는 성경에 나오는 격변적 심판의 결과로 해석한다. 한편 진화론자들은 수억 년 전에 살았던 진화의 과정에 있던 생물로 해석한다. 이와 같은 현실 때문에 기원이나 과거 역사에 대하여 말할 때 데이터와 해석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글을 쓰게 된다면 독자들에 혼돈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교과서나 과학잡지를 보면 그것이 데이터인지 해석인지 거의 구분 없이 나열되어있다.

   

우 박사의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저자가 단어 사용에 있어서 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런 통찰 없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디서부터 데이터이고 어디서부터 해석인지 혼동 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그릇된 용어사용은 과학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이다. “진화론 = 과학이라는 전제 하에서 자신의 생각을 전개해나간다. 진화론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문장에서 저자는 지속적으로 과학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과학은 진화론보다는 훨씬 포괄적인 단어다. 과학이란 단어를 쓸 때는 어떤 지식체계도 될 수 있고, 방법론적인 과정이 될 수도 있다. 반면에 진화론이란 앞에서 설명했듯이 데이터에 대한 해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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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문에서부터 책의 목적을 크리스천이 과학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를 풀고 과학을 거부하기 보다는 수용해서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p.11)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책 전체를 보면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과학진화론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학이라고 하면 독자들의 머리속에는 교과서에서 본 중력의 법칙’ ‘보일의 법칙과 같은 것들이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과학이란 단어를 모두 진화론으로 바꾸어 읽으면 앞으로 저자가 전개하려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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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지적설계 운동가들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찾아내어 그것을 설계논증에 사용한다(p.187)’고 비판한다. 그러나 실제로 지적설계 운동가들은 생물들을 관찰할 때 진화과정(과학이 아니라)으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에 설계를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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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를 보자. “생물의 변화과정을 연구하는 진화 이론 자체는 무신론 혹은 유신론이 아니라 그저 과학이란 말이지. 무신론이나 유신론은 과학에 대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네”(p.37). 이 문장에서 분명 저자가 진화론과 과학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저자는 기자와의 대화 속에서 진화론 = 과학으로 규정해버린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어떤 사람도 진화되는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진화론은 해석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무신론과 유신론이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무신론 유신론 문제는 신념체계이지 해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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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용어의 오용을 알고 보면 진화론과 과학에 대한 그릇된 용어 사용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과학에 대하여 고찰하다’, ‘성경과 과학, 함께 생각하다’, ‘과학과 기독교, 적일까 남일까’, ‘과학의 창으로 창조를 보다와 같이 책의 소제목에서 과학이란 단어를 사용하였지만 책 내용을 읽어보면 하나같이 진화론을 과학으로 용어를 오용한 것이다. 모두 과학이란 단어를 진화론으로 바꾸면 정확한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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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사역자들은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신앙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나 둘 다 과거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다. 창조과학자들도 동일한 데이터를 갖고 우리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은 과거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진화론자와의 차이점은 거기 계셔서 계시하셨다고 하는 분의 성경을 갖고 있다는 차이 뿐이다. 과거 사실을 알고자 하는 입장에서 소위 증인의 증언을 만난 것이다. 그러므로 형사가 증인을 받아들이듯이 자연스럽게 책의 기록을 참고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 기록을 통해, 생물들을 종류대로창조하셨다고 하시고, 이들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하시고, 그 이후 전 지구를 쓸어버리셨다는 증언을 들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이화석도 없고 생물들이 서로 교배할 수 있는 한계로 묶여진다는 것, 그리고 이들을 다스리는 존재라고 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우리의 모습이 맞아 떨어진다. 또한 엄청난 규모의 지층과 그 속에 매몰된 화석들을 보며 역시 성경에 기록된 홍수심판 사건과 일치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