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on Worldview 4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by honey posted Jun 2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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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on Worldview 4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최태현, ACT뉴스 20115

 

 

고대 그리스인들은 스스로에게 사랑에 빠졌던 사람들이다. 유명한 철학자의 한 사람인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을 남겼다. 모든 만물의 가치를 판단하고 지위를 부여하는 기준은 인간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사고는 오늘날 듀이로 대표되는 소위 인본주의자들의 사고와도 일맥상통한다. 인간이, 최소한 현재까지는, 최고라는 것이다.

 

아즈텍인들은 걱정이 많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이 주기적으로 망하고 다시 시작한다고 믿었다.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세상의 소문은 바로 아즈텍인들이 계산한 주기에 따라 나온 이야기이다. 어둠과 태양은 서로 싸우는데, 태양이 지면서 세상이 망한다. 세상이 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즈텍인들은 태양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그리고 그 제물을 찾기 위해 정복전쟁을 계속하였다.

 

인도인들,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동양인들에게 자기 자신은 불안한 존재였다. 늘 욕심 때문에 진실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존재인데다, 욕심이 과하면 다음 세상에서는 미물로 태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열심히 수행하면 다음 세상에서는 부처로 태어날 수도 있다.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며, 끝없는 시험대 위에 서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쾌락도 덧없고, 고통도 실체가 아니며, 죽어도 끝이 아니다. 현세에서 벌인 일은 내세에서 갚아야 하거나, 보상받는다. 그러나 그것도 끝이 아니다.

 

근대 서구인들은 오랫동안 섬겨왔던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신은 죽었다고 했던 프리드리히 니체부터 아마도 신은 없을 테니 인생을 즐기라는 광고에 모델로 나선 리처드 도킨스까지, 모든 생물은 단순한 형태로부터 자연히 진화되어 나왔다는 아이디어를 낸 찰스 다윈부터 온 우주는 신의 창조가 아닌 자연과정으로 말미암았다는 스티븐 호킹까지, 신앙의 중심을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자신으로 옮긴 쇠렌 키에르케고르부터 망망한 바다에서 홀로 자신의 존재를 위해 투쟁하는 노인을 그린 어네스트 헤밍웨이까지, 서구인들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 하나님을 지워나갔다.

 

미안하지만 이들 중 어떤 사상도 인간의 가치에 대한 진정한 대답은 아닌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 사상들은 허무하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지만, 네가 다르고 내가 다른데 그럼 누굴 척도로 삼아야 하는가? 소피스트란 스스로가 최고의 척도가 되고자 웅변술에 매진했던 사람들 아닌가. 아즈텍인들에게 신의 심판을 늦추는 일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인신공양으로 구원이 오겠는가? 이 세상이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순환된다고 한다면, 완전히 체념하거나 무엇이든 해도 상관없는 것 아닌가. 하나님을 지워버린 근대 서구인들이 우리에게 제시한 희망은 과연 무엇인가.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어떤 이들은 다시 소피스트가 되었고, 어떤 이들은 세속적 종말론에 빠졌으며, 어떤 이들은 체념이 주는 사상적 매력에 푹 빠졌다. 뱀이 뱀의 꼬리를 물고 돌고 있지만, 끝은 보이지 않는다.

 

성경은 가르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창세기 5:1은 이렇게 적고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망망한 밤하늘의 우주를 바라보며 자신은 티끌이라고 가슴을 치는 인간에게 성경은 말한다. 너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자신이 노력만 하면 신처럼 될 수 있다고 강변하는 인간에게 성경은 말한다. 너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성경은 또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5:2).” 고대 설화처럼 신들 대신 일을 할 필요를 위해 인간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자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성경은 또한 말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이사야 53:5)” 지금껏 배워온 이 세상의 어떤 종교나 가르침도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로 이렇게 무조건적이고 전적인 창조주의 희생을 노래한 것은 없다. 성경만이, 우리의 창조주가 우리 대신 희생하여 우리의 구원자가 되었다고 가르친다. ? 우리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으며 그분이 복 주신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근원에 대해 세상은 확실하게 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잠정적인 대답들도 인간을 그다지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인간을 귀하게 여긴다 해도, 피조물 중 최고 혹은 진화과정상 현재까지 최고라는 것이지, 인간의 궁극적인 존귀함을 말해주진 못한다. 성경만이 인간이 얼마나 존귀한지, 왜 존귀한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성경은 말한다.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누가복음 3:38)”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것이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요, 왜 존귀한지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창세기 1장은 바로 이러한 인간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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