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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홍수 (9) 불가지론자(Agnostic, 不可知論者)

이재만 (LA 창조과학 선교사, 지질학, 구약학, ark@hisark.com)

 

성경을 변증하다 보면 곧잘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궁금한 것처럼 질문을 하면서도 타당한 대답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설령 타당한 답이 나왔을지라도 또 다른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진다. 이런 경우는 답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보다는 상대방이 답을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대하고 있는 경우이다.

 

그의 자세를 보면 만약 자신에게 믿을 만한 근거를 준다면 믿겠노라고 말은 하지만, 자신은 결코 믿지 않겠다는 마음을 쥐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불가지론자(agnostic)”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신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를 결정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믿는 사람(someone who believes that one can know only about material things and so believes that nothing can be known about the existence of God)”을 지칭하는 단어다.

 

이들은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시작을 하며 내심 말하기는 믿을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믿지 않았지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면 언제든지 믿을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어떤 경우는 성경에 관한 질문을 하였기에, 성경을 인용하려 하면 성경은 언급하지 말고 이야기 하라고 하기도 한다. 창조과학이 이들에게 성경 내에서 주는 증거 외에 다소 객관적인 증거를 보여주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이들을 성경으로 인도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냥 우기는 것에는 어떻게 하랴!

 

얼마 전 한 구역모임에서도 초청을 하여 가보았더니, 구역장이 미리 귀띔하기를 이러한 한 사람이 있어서 목사님께 허락을 받고 필자를 불렀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구역원들이 어떡하면 이분께 복음을 전할까 고심했을 뿐 아니라, 많은 기도를 해왔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역시 강연동안에 공격적인 자세였을 뿐 아니라, 타당한 설명을 했어도 자세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몇 가지 타당한 대답에 위기감이 느낄 만 할 때에 불가지론자의 자세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어떤 사람이 있는데 모든 것을 믿을 때까지 믿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모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결코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모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계속 이어나갔다. “창조과학을 한다고 하지만 저 역시도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궁금했던 것이 성경적으로 가장 타당한 답이었던 것으로 보아 그 추세를 이어가면, 나머지 성경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분명히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믿습니다제삼자의 예를 들은 것 같지만 자신이 바로 불가지론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다음부터는 우기지는 않는 것 같았다.

 

바로 이어나갔다. “우리가 믿든지 안 믿든지 성경은 사실입니다. 이 세상은 어떠한 창조자에 의해서 창조되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자가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은 전지(omniscient, 139:17, 18)하시다고 했습니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께 물어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분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그러나 감히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창조자가 우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표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경우도 그렇지만, 전하는 자보다 전함을 받는 자가 더 부담을 느낀다. 왜냐하면 전하는 자야 진리를 전하는 자신감이 있는 것이고, 상대방은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어야 하는 기로에 서있기 때문이다. 창조과학을 통해서 창조주를 전할 때도 똑 같은 분위기다. 우리는 답이 있는 상태로 접근하는 경우고 성경이 맞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답이 없는 상태로 모든 것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느긋한 쪽은 성경, 즉 답을 갖고 있는 우리쪽인 것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계셨던 분을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38:3-4)

 

"Gird up now thy loins like a man; for I will demand of thee, and answer thou me. Where wast thou when I laid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declare, if thou hast understanding.- Job 38:3-4

 

출처: http://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56&param=type=C|authorname=이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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